카테고리 없음

섬김의 미학

김희경박사 2024. 7. 29. 13:29

“인간적 삶은 생동성(Lebendigkeit)이며 인간의 생동성은“관심을 가지는 것(Interessiertsein)”을 말한다”희망의 신학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Moltmann.1926~2024)은 말했다. 삶에 대한 관심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참으로 인간적인 삶은 사랑으로부터 오고, 사랑안에서 생동하며,사랑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삶을 생동하게 만든다. 관심을 가지는 것이 섬김이며 사랑의 표징이다. 일생을 가난하고 의지할 곳이 없고, 쓸쓸히 죽어가는 사람, 한센병 환자들과 더불어 빈곤하게 지냈던 테레사(Theresa. 1910~1997)수녀가 미국 국회를 방문해서 했던 연설의 마지막 한 마디 말에서 알 수 있다.“섬길 줄 아는 사람만이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다”이다. 국민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지도자가 생동감이 넘치는 역동적 사회를 만들어 낸다. 옛날 중국의 묵자(墨子. BC468~376))는 겸애(兼愛)를 주장했다. 겸애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차별없이 더불어 사랑하는 것이다. 공자가 주장하는 인애는  차별적이기에 의롭지 않다고 했다. 서로 섬기는 사회가 의롭고 선한 사회이다.  

  섬김은 우리말 사전에서는 공경하여 받들어 모심이라는 정의하지만 그 의미는 유교적이다. 어원으로 보면 섬기다는 “서다”와 “마음”,“기르다”의 조합이라고 한다. “어떤 뜻을 마음에 일으켜 세워 길러 나간다”는 의미이다. 맹자(孟子. BC372~289)는 사친위대(事親偉大) 곧 “섬기는 일 중에 가장 큰 것은 어버이를 섬김이 가장 큰 것이다. 어버이를 섬기기 위해 지키는 일 중에 가장 큰 지킴은 자기 몸을 지키는 것이다. 어버이를 섬김이 섬김의 근본이고 내 몸을 지킴이 지킴의 근본”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사(事) 곧 일하다는 본래 모시다, 섬기다의 뜻이다. 사대주의(事大主義)는 큰 나라를 섬긴다는 뜻이다. 우리가 주고 받는 인사(人事)도 섬김이다. 일은 이기(利己)를 추구하지만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을 주며, 이롭게 하는 이타적 속성을 지닌다. 고대 히브리어의 의미도 한자와 같다. 히브리어에서 “아바드”는 섬기다. 예배하다(Service)인데 본래의 뜻은 일(Work)이다. 사람은 일하는 존재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존재이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朴景利, 1926~2008)의 고백이다.“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내가 죽어 흙이 된 대지 위에 더욱 굳세게 자녀를 서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을 지속시키는 것이며 그 생명이 우리의 내일이며 미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것, 섬기는 것을 겁내서는 안됩니다.”그녀의 삶과 글쓰기의 원동력은 생명을 섬기는 것이었다. 섬김은 사람으로서 삶의 목적이며 의미이다. 사랑은 섬김으로 표현되고 실증 된다. 섬김의 러더십은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자세로 구성원들을 후원하고 지지함으로써 잠재력을 이끌어 낸다. 로버트 K. 그린리프(Robert K. Greenleaf. 1904~1990)는 헤르만 헷세의 소설 동방순례(Journey to the East)에 등장하는 레오(Leo)라는 인물을 모델로 서번트 리더십이론을 제안했다. 소설에서 레오(Leo)는 순례단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하인과 같은 존재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다. 여행 도중에 갑자가 레오가 사라져 버렸다. 레오가 없는 순례단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 어찌할바를 모르게 되고 여행은 중단된다. 몇 년 후에 레오를 찾았을 때 그는 사실 하인이 아닌 순례단을 후원하는 교단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리더(Leader)는 종(Servant)이다”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은 동서양이 같다. 우리는 정치인이나 공무원을 공복(公僕. Public Servant)으로 알고 있다. 영어도 마찬가지이다. 장관이나 목사를 의미하는 미니스터(Minister)도 동사는 섬기다. 봉사하다. 보살피다의 의미를 갖는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장관을 세크리타리(Secretary)라고 하는데 역시 종복(從僕), 비서라는 의미이다.  

  세상은 서로가 섬김의 연결고리로 얽혀있다. 섬김의 고리가 끊어지면 그대로 무질서로 이어진다. 섬김은 섬돌같은 것이다. 섬돌은 텃마루나 문턱이 높은 곳의 오르내리기를 돕는 디딤돌이다. 다른 이의 약함을 도와주고 편리함을 제공하는 디딤돌이 섬김이다. 어떤 일의 좋고 나쁨을 판별할 수 있는 잣대는 섬김의 동기가 있는지 없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성경에 보면 예수는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나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20:26~28)”고 했다. 섬김은 자기를 내려놓는 낮아짐에서 시작된다. 섬김은 거짓 없는 진정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섬김은 물러서서 다른 사람을 세우고 지지해주기에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