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앎의 미학

김희경박사 2024. 9. 25. 07:28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이다. 인생은 나이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의 결핍으로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을 보태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에 주름이 진다. 마음을 늙게 하고 정신을 매장하는 것은 고뇌와 공포와 자포자기이다. 경이에 대한 찬미, 미래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 그리고 삶에 대한 환희는 16살의 가슴에나 60세의 가슴에나 똑같이 깃들어 있다.” 미국의 사업가, 시인, 유대교 랍비인 사무엘 울맨(Samuel Ullman. 1840~1924)의 시 ’청춘‘의 일부이다.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이 일본을 점령하고 군정을 할 때 연설을 할 때 이 시를 인용하여 미국보다 일본에서 더 알려졌다고 한다. 꿈과 호기심을 잃어버리면 젊음을 잃게 되는 것이다. 장애가 있던 미국 제32대 대통령 루즈벨트를 대신하여 배우자의 자격으로 많은 활동을 하였던 엘리너 루즈벨트(Eleaner Roosevelt.1884~1962)여사가 1943년에 호기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기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신에게 부탁해서 이 아기가 가질 가장 유용한 재능으로 한가지만 선물로 받을 수 있다면 아마도 어머니는 호기심을 부탁하지 않을까 싶다”. 인류문명은 인간의 호기심에 의해 발전했다. 호기심은 새롭거나 신기한 것에 끌리는 마음이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연과 사물의 현상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끊임없이 탐구하게 만든다.

  한편, 우리는 욕구의 허기(Hangry)를 갖고 살아간다. 경제적 허긴인 가난에서, 사회적 관계의 허기인 외로움에서, 지적 허기인 무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애를 쓴다. 채우기에 매달려 바쁘게 살지만 결코 충분하지 않다. 배고픔이나 알고픔은 욕구를 메우려는 인간의 본성이다. 어느 시인은 슬픔으로 고픔을 먹는다고 한다. 고픔과 아픔은 같은 고통이지만 고픔을 제대로 채우면 아픔을 예방도 하고 치유도 할 수 있다. 고품은 허기를 느끼고 채우고 싶은 생물학적 현상이다. 앎은 지적 허기를 채워 주기도 하고, 낯선 관계의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고, 시작하는 일에 망설이고 두근거림을 이기는 자신감을 준다. 20세기 인문학자이며 생물학자인 움베르또 마뚜라나(Umberto Maturana)와 그의 제자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cisco Varela)가 쓴 ‘앎의 나무(Tree of Knowledge)’에는 이런 글이 있다.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 우리가 앎을 통해 산출한 세계 안에서만 낯설지 않다”. 이 책은 생명체는 외부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을 조직하고, 변화시키기 때문에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구성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소크라테스는 ‘앎의 무지’를 이야기했다. ‘너를 알라’는 무지한 자기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한계(Limit)와 취약성을 모르면서 스스로 지혜자로 여기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자 정치가 솔론(Solon, BC638~558)도 ‘자기를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Thales. BC640~624년경)도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고, 가장 쉬운 것은 남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자(孔子. BC551~479)도 제자 자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子曰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유(자로)야 너에게 앎이 무엇인지 가르쳐줄까?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한다. 이것이 앎이니라.” 자아인식(Self-Awareness)은 자신을 개인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생각, 감정, 행동을 이해하며 세상과 구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자기 정체성이다. 자기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자기인식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형성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자기인식은 자기조절을 포함한다. 자기 감정을 알고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것을 배우고 긍정적 감정을 증진시키는 능력이다.

  참된 앎은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이다. 우리는 쏟아지는 정보에 파묻힌 디지털시대를 살고 있다. 정보(Information)와 데이터(Data)의 더미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각종 소셜미디어을 매개로 거짓정보와 유혹, 음모론이 범람한다. 인간은 속성상 가짜 정보에 속기 쉽다. 심리학자들은 그 이유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알고 싶은 것만 보는 인지적 편향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도 마찬가지이다. 거짓을 구별하려면 인지편향과 확증편향의 그물을 찢고 벗어나야 한다. 참된 앎을 위해 우리의 익숙함과 낡은 사고와 지식, 편협된 신념의 묵은 찌꺼기들을 배설해야 한다. 겹겹이 쌓인 분노와 혐오, 이데올로기의 껍질을 벗어내고 유연해져야 한다. 마음을 열고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위해 앎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