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의 미학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신라의 48대 왕인 경문왕은 즉위를 한 후에 갑자기 귀가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되었다. 그러나 궁안에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오직 두건을 만드는 장인 한 사람만 알고 있었다. 그는 비밀을 말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심지어 병이 들 정도였다. 죽을 때가 되어 그는 인적이 없는 도림사의 대나무 숲속에 가서 외쳤다. 그 후로 바람이 불 때 마다 대나무 숲에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소리가 들렸다. 당나귀처럼 멍청한 왕이 아니라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귀울이는 현명한 왕이 되라는 해학적 이야기이다. 두건을 만드는 장인의 아름다운 폭로는 왕을 옳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비밀을 가지고 있다. 남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과 자신에게 숨기는 비밀이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허물과 상처, 공포, 부끄러움, 배신, 창피함, 후회스러운 아픔의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이런 비밀들은 감정의 고립에 가두고 관계의 어려움을 만든다. 심리학자들은“우리는 마음 속에 비밀을 간직한 만큼 병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닫힌 마음은 독이 된다. 우리의 성숙을 막고, 건강을 해친다. 우리의 지성은 물과 같다. 고여 있으면 순수함을 잃게 된다. 고이지 않고 계속 흘러야 깨끗함을 유지한다. 순전함과 호기심, 열린 마음은 건강한 삶을 만든다. 우리의 삶이 건강해지려면 마음을 채우고 있는 비밀들을 폭로하여 털어놓음으로 자유를 누려야 한다. 심리학적인 통찰에 의하면 우리는 은밀한 사연들을 간직하는 만큼 병들고, 정직하게 드러내는 만큼 건강해질 수 있다. 누구나 마음의 은밀한 사연들은 있다. 그것들을 은폐하려는 우리의 의지에 대항해서 밖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뿌리 갚은 상처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고투한다.
폭로(Revelation)는 Exposure(노출), Disclosure(공개)등의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지만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한자의 폭로는 햇빛 쪼일 폭(暴)과 이슬 로(露)이다. 뜨거운 햇빛을 쬐인 이슬은 금방 사라진다. 폭로는 어둠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둠은 닫혀진 마음이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깊은 사연이고 아픔이고, 고통스러운 상처이다. 치유를 위해 드러내야 하지만 쉽지 않다. 2004년 미국의 예술가인 프랭크 워렌(Frank Warren)은 비밀엽서 프로젝트(Postsecret project)를 시작했다. 그는 무작위로 선정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소를 적은 3천통의 엽서를 발송했다.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익명으로 보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수천통의 비밀엽서들이 도착했고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다. 무려 2천5백만명이 그의 홈페이지에 방문했다. 엽서들을 모아 다섯권의 책으로 출판하고, 대학교 등 여러곳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놀말만한 비밀스러운 사연들이 담겨진 엽서들은 의외의 효과를 가져왔다. 폭로된 비밀들은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대부분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고, 마음 속의 비밀을 폭로함으로 연대감을 느낀다고 했다. 사람들은 비밀을 공유함으로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일치감을 가졌다. 비밀을 폭로함으로 삶의 방향을 찾고 희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 내면에 쌓였던 폭로된 비밀은 변화를 가져오는 잠재력을 갖는다.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변화를 겪는다. 미국의 텍사스대학교의 심리학교수인 제임스 페니베이커(James W. Pennebaker)는 자기 내면의 비밀스러운 상처들을 글쓰기를 통해 털어놓으면 긴장감이 줄고, 면역체계가 강화되며, 더 많은 행복을 느끼고 자신감을 찾는 열쇠가 된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서 생각들, 감정들 그리고 행위들을 표출하지 않고 과도하게 가두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크고 작은 질병에 걸리게 할 수 있다. 마음에 곤란한 것들에 대해 쓰거나 말하는 것은 우리의 기본적인 가치들, 즉 생각하는 방식이나 자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의 비밀을 폭로하는 과정에는 일종의 거룩한 분위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어떤 엽서들은 고통스러운 사연으로 채워져 있고, 기도를 드리는 듯한 거룩함이 보였다고 한다. 기도는 말할 수 없는 내면을 신에게 털어놓고 드러내는 고백이다. 우리 자신의 내면을 털어놓고 폭로하면 나를 치유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