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꽃의 미학
“인생은 연극이고 우리 인간은 모두 무대 위에 선 배우이다". 잉글랜드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말했다. 무대 위에 선 배우는 주연과 조연으로 나뉜다. 어떤 무대이든지 주인공을 기준으로 시나리오가 전개 된다. 주인공의 역할을 하는 주연은 당연히 무대를 이끌고 주목을 받는다. 조연은 주연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스토리를 흐름을 완성하고, 주연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고,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되도록 돕고, 이야기의 흥미를 갖도록 만드는데 필수적이다. 주인공이 없는 극은 있어도 조연이 없는 경우는 없다. 물론 영화나 연극 등의 조연도 있지만 팀 스포츠에서도 공격수로 골을 넣거나 점수를 내는 선수들보다 주목을 받고 화려하지 않지만 수비를 하거나 어시스트로 득점에 공헌하는 선수들이 있다. 회사나 공동체에서도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성과를 내는 데 중요한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조연들이 있다. 우리 사회의 각 영역에서 이름없이 봉사하고 헌신하는 이들도 있다. 조연은 단순한 도우미가 아니라 조직이나 사회공동체를 완성하고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내는 존재이다.
산수국(山水菊)이나 백일홍(百日紅)등 꽃들은 헛꽃과 참꽃으로 구조를 이룬다. 참꽃의 주위에 화려한 색과 아름다운 모양을 가진 헛꽃은 향기도 꿀도 내지 않는다. 다만 참꽃의 수정을 위해 시각적 매력을 한껏 발휘하여 벌들을 끌어 들이는 조연 역할이 그 사명이다. 참꽃이 수정이 되면 헛꽃들은 활짝 피었던 꽃잎을 내리고 참꽃을 드러나 보이게 한다. 헛꽃이 아니면 참꽃은 자기가 해야하는 수정을 할 수 없다. 자연은 우리에게 무한한 지혜를 준다. 헛꽃과 참꽃의 조화롭고 아름다운 현상은 창조의 신비임에 틀림없다. 벌꿀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여왕벌의 수정을 위해 수많은 일벌들은 꿀을 만들고 집을 짓는 일로 일생을 소비한다. 신은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와 여자가 서로 돕는 배필이 되게 하셨다. 돕는다는 단어는 거들다, 힘을 보태다, 촉진시킨다의 조연의 의미를 갖는다. 배필은 배우자(Spouse)로 파트너(Partner)이다. 부부가 상호 간에 존중하고 돕는 배필로 형성되는 가정은 사회공동체의 원형(原形)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서로가 상대를 참꽃인 주연으로 여기면서 헛꽃처럼 조연에 충실하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밝고 아름답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주연으로 살기를 바라고 원한다. 인생은 자신이 주인공이고 연출자라고 하지만 실제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역사를 보아도 주역은 그 시대를 지배했던 왕이나 황제들이었고 귀족이라 하더라도 통치자 이외의 모든 사람은 조연이었다. 그럼에도 역사는 화려한 주연 뒤에는 빛나는 조연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2023년에“주연들의 나라 한국, 조연들의 나라 일본”이라는 책이 나왔다. 저자는 이누미야 요시유키(犬宮義行)이다. 그는 일본 히토츠바시대학(一橋大學)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1993년 한국에 유학을 온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으로 석사, 문화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인과 결혼하고 26년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다. 그는 책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심리의 구조적 차이를 밝히고 있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주연처럼 사는 주체성 문화이고, 일본은 많은 사람들이 조연처럼 사는 대상성 문화라는 관점을 가졌을 때 상대방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이해도 한층 깊어진다고 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주체성을 가지고 주인공으로 살아야 한다고 배우고 그런 기대를 갖고 살고 있다. 당연히 개인의 개별성은 마땅히 존중받고, 발전되고 향상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 자기확신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균형감을 갖는 삶이 필요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역할을 한번도 못하고 조연배우로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배우들도 있다. 요즘 국회에서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국정감사는 각 정부기관과 공공부문이 법적 기준과 공공이익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정책의 효과성과 문제점을 파악하여 과도한 행정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국민들이 알고 싶어하는 국정에 관한 정보를 여야의원들이 대신해서 질의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장이다. 정부는 정책에 대한 신뢰와 참여를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질문하고 감사하는 의원이 주체가 될 수 있다. 진정한 국민의 대표는 국민이 참꽃인 주연이고 의원은 헛꽃인 조연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역할에 임하는 것이다. 조연이 주연을 앞서면 아무리 좋은 드라마도 서사가 빠진 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