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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함의 미학

김희경박사 2024. 11. 5. 21:18

“세상에 기쁨만 있다면 우리는 담대함과 인내하는 법을 결코 배울 수 없을 것이 것입니다”들을 수도 볼 수도, 말할 수도 없었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의 사회 운동가로 활동했던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는 말했다. 그녀의 인생은 담대함 그 자체였다. 담대심소(膽大心小)라는 말이 있다.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논리적이고 짜임새 있는 문장을 쓰려면 기개나 뜻은 크게 가지면서도 주의할 것은 세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말이나 글로 쓸 때 담대한 솔직함이 전제 되어야 한다. 이를 고대 그리스어로 파레시아(Paresia)라고 한다. 파레시아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pan’과 말해진 바를 의미하는‘rema’가 결합된 단어로 영어는 free speech로 번역한다. 파레시아는 고대 아테네의 시인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4~406)가 처음 사용했다. 문자 그대로 보면 ‘모든 것을 말하다’,‘자유롭게 말하다(Free speech),‘대담하게 말하다’,‘담대함’이다. 명사인 파레시아스테스(Paresiastes)는 진실을 말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베드민턴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안세영의 파레시아가 한국 스포츠를 새로운 도약을 점화시켰다. “진실을 말할 의무”를 연구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파레시아를‘진실을 말하는 용기’‘위험을 감수하는 담대함’‘비판적 태도로의 접근’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다른 사람과 기울어진 권력관계에서 진실을 말하면 다가올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옳은  가치관과 윤리적 태도를 지키는 것이다. 안세영은 위험을 알면서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모할지 모르지만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는 담대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오늘도 공권력과 사법권이 초라해지는 현실을 본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우선되기 때문이다. 요즘‘지옥에서 온 판사’라는 드라마를 본다. 판사에게 주어진 사법권이 정치나 돈의 권력으로 회유와 방해에 의해 침해를 받는다. 강빛나판사는 권력의 요구를 들어 피해자 가족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어이없는 판결을 하지만 사적으로 범죄자를 처벌하고 결국 지옥으로 보낸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흉악범에게 사형을 선고함으로 사법권을 회복한다. 동생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감옥에서 나왔던 범인은 도망을 가지만 지옥에서 온 판사는 그를 찾아내고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는 범인을 사적제제를 통해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을 되돌려 주고 처형한다. 피의자들이 권력을 쥐고 공권력과 사법권을 무력화시키는 현실을 반영하는 듯한 드라마의 서사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와 칼리클레스의 대화가 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나는 자네를 만나 횡재를 했네. 칼리클레스는 어째서 그러냐고 되묻는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영혼이 갖는 의견들에 대해 자네가 내게 동의한다면, 바로 그것들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올바르게 사는 영혼과 그렇지 않은 영혼을 충분히 시험하고자 하는 자네가 가진 에피스테메(Episteme; 지식)와 에우노이아(Eunoia: 호의), 그리고 파레시아(Parresis: 솔직함), 이 세가지를 모두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네”라고 말했다. 올바른 영혼을 가진 사람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준다. 신뢰감의 기본 특성인 능력(Ability), 선의(Benevolence), 성실(Integrity)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으려면 용기도 중요하지만 말하는 사람의 설득력이다. 설득력도 위의 세 가지와 유사한 요소를 가진다. 논리적이고 이성적 논증인 로고스(Logos), 감정적 호소인 파토스(Pathos), 화자의 신뢰성, 진정성, 도덕성인 에토스(Ethos)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리더들이 진실만을 담론화해야 한다. 거짓과 왜곡된 주제로 담론으로 만들면 사회가 병든다. 불신이 팽배해진다. 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이 골이 더 깊이 패인다. 성경은 불의에 담대한 사람들을 경고한다.“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 질을 하며,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그러므로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잠6:12~15)”. 담론은 사회적 이해와 합의를 이끌어 내는 소통의 수단이다. 담론은 공적이어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위한 담론은 비겁하고 치졸한 왜곡일 뿐이다. 파레시아는 특정 주제에 대해 여러 사람이 의견을 주고 받으며 논의하는 대화나 논쟁 그 이상이다. 진실을 전제로 하는 담론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