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의 미학
“내가 만난 가장 가슴 아픈 사람, 어찌어찌하다 마음 화상을 입은 그 사람, 파르르 떨릴 속 눈섶이 없는 그 사람, 창밖과 창 안의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 사이의 미학은 이쪽저쪽이 피붙이들처럼 꼭 붙어 있는 것인데, 눈을 감아도 피안과 차안 사이에서, 차마 떨 수도 없는 그 사람.” 서울 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이사라교수의 사이라는 시이다. 사람은 사이를 가진 인간(人間)이다. 사이는 시간적 흐름, 공간적 틈새, 개체의 간격, 겨를과 짬, 여유, 관계적 의미를 지닌다. 신약학 교수 김호경박사는 그녀의 책에서 철학자 김용석박사의 사이의 이중적 의미를 인용한다. 인터(Inter)와 인트라(Intra)이다. 인터는 between(사이)를 갖지만 어떤 것과 다른 것의 중간, 관계, 상호성을 의미한다. 인트라는 within으로 어떤 것의 일정한 범위, 안, 내부환경 등을 의미한다. 인터는 자신과 다른 것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반면 인트라는 범위의 형성이나 환경조성을 강조한다. 인터는 외부와 확장에 관심이 있지만 인트라는 내부의 결속에 관심을 가진다. 인트라에 집중하면 우리사이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들은 친밀함으로 끼리 문화를 형성한다. 인터는 나와 너 사이다. 이는 상호성에 주목한다. 내부의 결속도 중요하지만 이는 배타와 배제의 장벽을 만든다. 이 담장을 넘어야만 나 아닌 다른 개체와 연합, 융합, 유대가 가능하다.
사이에는 늘 긴장감이 있다. 서로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름과 낯섬이 불편을 느끼게 한다. 성경은 우리가 너와 나 사이에서 서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분명하게 알려준다.“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 우리가 지체가 되었기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사랑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해야 한다”고 바울은 다양한 사고와 의지, 감정, 태도를 가진 에베소교회에 사이의 긴장을 극복할 수 있는 지침을 준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헤프닝처럼 끝났지만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는 높은 담장을 치고 소통이 끊어진 정치의 이면을 보여준다. 정부와 국회사이에 힘의 균형을 갖고 견제와 협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일방이 독단적인 힘으로 할 수 없다. 정치적 이유로 민생과 사회안전을 도외시하고 무리하게 예산을 삭감하거나, 수 차례나 반복되는 국가공무원의 탄핵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 국정이 마비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영향을 미친다. 세계는 코로나와 전쟁으로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진지 오래다. 국민은 지치고 기업은 겨우 버티고 있다. 정치가 위로와 힘이 되어야 한다.
촘촘한 직조(Weave)는 든든하고 시너지를 만든다. 우리는 타인과 연결된 관계의 패턴이나 네트워크에 속해 있다.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도서4:12)”너와 나의 사이는 그물이다. 그물은 씨줄과 날줄(warp & warp)로 엮여 있다. 관계망의 고리를 끊어 내는 일은 다같이 망하는 지름길이다. 그물의 구멍이 망가지면 고기를 잡을 수 없다. 지역과 정치 이념, 세대 사이에 구멍나고 어긋나고 찢긴 곳을 메우고 바로잡고, 회복시키는 정치를 할 때 사회통합이 될 수 있다. 감정의 유연성과 가치관의 견고함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아름다운 가치를 만든다. 사이를 벌어지게 하고 소통을 방해하는 것은 불신이다. 신학은 신과 인간의 사이가 무너진 것은 죄라고 한다. 서로가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훼방하는 것은 거침과 더러움이다. 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신뢰와 깨끗함, 균형이 전제 되어야 한다. 기차가 달리는 철로가 좋은 예이다. 장애물이 있거나 사이의 균형을 잃으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철로의 틈새는 온도의 변화에 따른 팽창과 수축의 변형을 흡수하기 위한 장치이다. 틈새는 고정된 구조물에서 예상치 못한 변화를 수용하고, 안정성을 유지한다. 단절과 연결의 반복은 흐름을 만든다. 틈새는 경계이기도 하지만 소통의 길이기도 한다. 사이 간(間)의 문사이의 日은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이다. 틈새는 외부와 내부의 경계이면서 소통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의 원자와 원자는 평형거리까지 가까운 사이가 될 때 최고의 안정된 접합을 가진다. 멀어지면 당기는 힘이 작용하고,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밀어내는 힘이 작용한다. 사이의 균형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금속의 접합은 전위차이가 적은 것들끼리의 접합이 우수하다. 전위가 다른 금속을 접합을 하려면 사이에 흠이 없는 깨끗한 상태와 적절한 매개와 열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 이념을 융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공유할 수 있는 매개와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행복이라는 가치이다. 그리고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절제된 조화이다. 한 발씩 물러설 수 있는 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