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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미학

김희경박사 2025. 1. 10. 07:46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이런 문구가 적힌 액자를 흔히 볼 수 있다. 축복의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성경의 배경은 전혀 다르다.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몸까지 상해 버린 욥을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온 친구들이“네가 죄를 짓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렇게 망할 수 있니?”하나님을 믿는다면 시작은 형편없지만 나중은 크게 될것인데 네가 망한 것은 너의 죄 때문”이라고 비아냥 대는 말이다.
  시작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어떤 일이나 행위가 처음으로 행해지거나 쉬었다가 다시 행해지는 것(Start)과 어떤 일이나 자연물 따위가 어떤 사건이나 장소에서 처음으로 발생하는 것(Begin)이다. 새로운 길을 가는 첫걸음은 만만치 않다. 기대와 희망,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공존한다. 지난 해를 도량발호(跳梁跋扈)의 사자성어로 정리했다고. 그 의미는 살쾡이가 껑충거리며 이리저리 날뛰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권력을 휘두르며 함부로 날뛰는 행태를 비판적으로 표현한다. 삼권의 국가권력이 견제를 뛰어넘어 하나같이 제멋대로 선을 넘어 날 뛰었다고 할 수 있다. 2025년은 극세척도(克世拓道)를 위한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 이는 어려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고 길은 개척하라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올해는 을사년(乙巳年)으로 푸른 뱀의 해라고 한다. 사실 뱀은 좋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뱀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뱀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면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들기같이 순결하라”고 했다. 세상은 속이고, 꾸미고, 착취하고, 삼키는 이리(Wolves)들로 가득한 위험한 곳이다. 순진하고 연약한 양이 그 틈새에서 이겨내기 힘들다. 하나님이 만드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했다고 한다. 간교하고 교활한 자를 히브리어‘아룸’이라고 하는데 이를 긍정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지혜로 해석되어 신중함과 슬기로움의 뜻이 있다. 순결은 자기를 지켜 본질을 오염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리가 날뛰는 악한 세상에서 신중하고 슬기로운 지혜가 필요하다. 유혹되고 오염되기 쉬운 상황에서도 순수한 마음과 신념을 지키라는 의미이다.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옳고 그름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는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다. 국가 간의 조약이나 약속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신의가 지켜지지 않는다. 법을 집행하는 것 조차 승자와 다수의 힘으로 무력화 되고 있는 현실을 본다. 이 시대는 캘리포나아 대학의 교수인 역사가 자마이스 카시오(Jamais Cascio)가 말한 대로 깨지고 부서지기 쉬운 시대이다. 어느 것도 방향성을 예측하기 어렵다. 상황에 따라 정의가 바뀌는 세상을 살고 했다. 우리 말을 하는데 끊임없이 쏟아지는 신조어는 의미를 알 수 없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AI)과 양자 등 첨단기술은 기계가 인간을 대체되고 인간이 기계의 보조가 된다. 데이터는 인간의 경험으로 만들어 냈는데 그 데이터에 인간은 포박되어 자유를 잃어간다.

  새해의 시작은 마냥 기대에 부푼 출발이 아니다. 시작부터 거대한 풍랑이나 움직일 수 없는 암벽을 만날 수 있다. 미국의 자기개발 코치인 개리 비솝(Gary John Bishop)은 시작의 기술을 썼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의심과 공포가 생긴다. 행동하면 자신감과 용기가 생긴다. 두려움을 정복하고 싶다면 집에 앉아서 생각만 하지 말고 나가서 바쁘게 움직여라. 시작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도전이다. 생각이 아니라 발걸음을 떼는 행동이다. 이를 위해 자기 확신을 외치고 시작한다. 나는 의지가 있어!, 나는 이기게 되어 있어!,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불확실성을 환영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나를 규정해!, 나는 부단한 사람이야!, 나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 시작은 실수를 허용하고 배움을 받아들이는 용기이다.

시작은 반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시작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개리 비솝은 꿈은 크게, 시작은 작은 것부터 하라(Dream big but Start small)고 말한다. 시작은 일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 수 있다. 삶은 이야기이다. 내가 원하는 삶의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주제를 정하면 한 해를 멋지게 시작할 수 있다. 여행을 가기 전에 필요한 정보와 준비물을 잘 갖추면 여행은 보다 경제적으로, 보다 큰 의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적어도 도도하게 흐르는 세상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흐름을 무시하고 거스리면 소모에 비해 성과를 얻을 수 없다. 뱀같이 신중하고 슬기로우면서도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지키는 한해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