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미학
“환상이란 삶의 도피이며 정면 대결에의 회피라는 생각은 좁은 편견의 오류일 뿐이다. 삶과 정면 대결하여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들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들은 어둡고 습습하여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사람들에게 각자 다른 모습으로 추정되는, 환상(幻想) 또는 허상(虛想)에서 비롯되어 존재할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양식(糧食)이 비롯되는 곳은 환상이다.”28살의 아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기형도(1960~1989)시인의 글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미래의 나를 대단하게 그렸다.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라던 그 미래에는 돈도 없었고,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 조차 없었다. 꿈꾸고 바라던 미래의 모습은 어릴 때 좋아하던 놀이의 확장판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어릴 때의 환상을 갖고 살아 왔다. 그 환상은 우리의 삶을 버티고 새우게 하는 정신적 에너지였다.
고대 헬라어로 환상은 판타스나(φάντασμα, Phantasma) 또는 판타시아(φαντασία, Phantasia)이다. 판타스마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유령, 환영을 의미하는 영어의 판타즘(Phantasm)이 되었다. 플라톤 철학에서는 감각적으로 보이지만 실재하지 않는 환영(illusion), 그림자 같은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판타시아는 상상력, 심상(Menta image), 환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판타시아를 감각을 기반으로 형성된 정신적 이미지(Mental representation)로 정의했다. 영어의 판타지(Fantasy)가 여기에서 파생되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환상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감각과 인식, 상상력과 관련된 중요한 개념이었다. 성경에서 바울은 실제로 예수를 만난적이 없었다. 그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체포하러 다마스커스로 가던 길에서 환상(horama)중에 나타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 그는 회심하고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고 기독교의 초석을 놓았다. 그 외에도 성경 속의 많은 인물들은 환상(opatasia) 속에서 천사를 만나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한다. 성경의 환상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신적계시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본래, 인간이란 종(種)은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도록 진화되지 않았다. 인간은 매우 근시안적이고, 상상력이 결핍돤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된다. 대체로 사람은 당장 어떤 보상을 안겨주는 일에 우선한다. 이런 선택 때문에 ‘미래의 나’는 예기치 못한 큰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오늘을 즐기다가 미래를 놓치는 경우는 허다 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하시필드(Hal Hershfieled)교수는 ‘미래의 나’를 연구했다. 내가 유익한 결정을 하려면 우선 ‘미래의 나’에게 공감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공감을 하려면 상대의 관점을 고려하고, 그의 형편을 이해하려 하며, 그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나’를 공감 하려면, ‘미래의 나’를 현재의 나와 다른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나’와 동일한 인물로 보기 때문에 환상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가끔 착각을 한다. 모처럼 만난 20년전의 친구는 그 때 그 사람이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20년 후의 나 역시 또 다른 나일 것이다. 미래의 나를 환상 속에서 만나고 공감해야 지금 올바르고, 유익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조직심리학자 벤저민 하디(Benjamin Hardy)는 미래의 나를 적용하는 과학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이다. 그가 쓴 퓨처셀프(Future Self)는 미래의 자신을 아는 것은 강력하고, 목적있는 삶을 사는 열쇠라고 말한다.
환상은 ‘미래의 나’와 공감하려는 열정과 간절함이 있는 사람만이 경험한다 재봉틀을 발명한 엘리어스 하우(Elias Howe)는 골몰하다가 꿈 속에서 자기를 잡아 먹으려는 춤추는 식인종들의 창 끝에 뚫린 구멍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Dmitri Mendeleev, 1834~1907)는 원소에 몰두하다가 꿈에서 본 플레잉 카드의 배열에서 주기율표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비디오 게임의 월드 디즈니라고 불리는 일본의 미야모토 시게루(Mitamoto Sgigeru, 1952~)는 교토 북서쪽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상상 속에서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었다. 여덟살 쯤 마을 근처의 산과 계곡을 탐험하며 자연에서 보내던 어느 여름 날 우연히 발견한 동굴을 혼자만의 아지트로 삼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동굴에서 보낸 경험이 훗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는데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환상은 미래를 현재로 끌어 오는 것이디. 미래의 나를 환상으로 만날 때 우리는 창의적 삶을 살아낼 수 있다. ‘미래의 나’의 이미지를 상상 속에 그릴 때 살아가는 목적과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 이미지를 이루기 위해 삶의 태도가 바뀌게 된다. 아이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AI를 통해 변화된 이미지를 보면서 노력하는 것을 본다. 어떤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은 “미래의 나”가 있기 때문이다. 환상은 꿈이고 비전이다. 환상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만나서 만드는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