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의 미학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치적 동물이다“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일하고, 설득하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정치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아고라(Agora)의 존재 필요성을 말했다. 아고라는 시장이고, 시민이 모이는 광장이다. 그리스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설득과 토론의 공간이었다. 우리 정치의 아고라는 국회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기능은 크게 훼손되었다. 정치는 대화가 아닌 전쟁의 언어가 난무한다. 또 다른 아고라인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 보다는 왜곡되고, 편향적 보도로 분노를 유통한다. 일반 시민은 입을 다물고, 귀를 닫았다. 침묵한다. 국회는 더 이상 아고라가 아니다. 서로를 비난하고 야유하는 아우성의 공간이 되었다. 말의 품격이 없다. 어디에서도 깊은 사유의 품격을 볼 수 없다. 오로지 거짓 확신에 찬 단순함과 증오의 선동이다. 틀림과 다름을 구분하지 못한다. 진실을 알려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가 분열과 선동, 모함으로 무너졌을 때, 법정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모욕했다는 죄명으로 누구보다고 정의롭던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의 제자 플라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는 가장 정의로운 스승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다수의 어리석은 통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수제자였던 플라톤은 위험을 피해 아테네를 도망쳐야 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비판했다. 어리석은 다수에게 국가를 맡기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의 철인 통치이론은 아고라의 훼손에서 비롯되었다.
아고라는 일상적인 종교활동, 정치행사, 재판, 사교, 상업활동의 공간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아테네에서는 여자는 물론 살인이나 그밖의 범죄로 기소된 남자들은 재판을 받기 전에 아고라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자유로운 신분의 남자들은 거래를 하고 배심원 노릇을 하거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려고 아고라에 갔다. 아고라는 공론의 장이다. 이곳에서 하는 말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책임을 전제로 하는 행위이다.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을 쓴 미국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말은 행위라고 했다. 아렌트는 그리스 시민들이 생계활동에서 벗어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이야기가 역사에 남으면서 개별 생명의 무상성을 극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말과 행위가 분리되지 않는 정치적 인간의 조건을 강조했다. 말은 공적 책임을 지는 행위이다. 이제 대선을 앞두고 토론과 공청회가 열릴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 언젠가 내 얼굴이 될 것을 안다면 더 품격있는 말로 생각을 빚어내야 한다. 공적 세계에서의 말은 단지 의견이 아니라 존재의 선언이자 공동체의 설계 행위이다. 우리는 공론의 장인 국회의 무너진 언어 풍경을 본다. 국민을 설득하는 사유의 언어가 없다. 상대를 허물을 들추고, 비아냥대며, 지지층을 동원하기 위한 전투구호로 전락하고 있다. 독일의 현대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1929~)는 공론의 장은 사적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성을 통해 형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이성적 대화를 통한 합리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고라에서의 대화는 서로의 차이(Difference)를 전제로 해야한다. 서로의 차이가 있음에도 공동의 진실을 찾아 더 나은 제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대 의견을 논박하는 대신 그 의견의 맥락을 이해하고 연결점을 찾으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선동과 냉소(Cynical)의 사이에서 정치적 피로가 깊어지고 있다. 공론의 장에서 소리지르는 사람들의 우격다짐과 억지, 낮은 품격의 말은 듣기조차 민망하다. 다가오는 대선은 그대로 전쟁이다,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말로 분열을 부추키지 말고 국민을 향한 진지한 설득과 약속이 있어야 한다. 아테네 민주주의와 제국을 발전시킨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429)는 말했다. “우리는 정치를 무관심하게 여기는 사람을 오직‘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자’가 아니라 ‘쓸모없는 자’라 부른다”그는 모든 시민의 아고라 참여의 책임을 강조한다.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어 있지만 그래도 국가를 위해 공적사유와 참여는 국민으로서의 미덕이다. 아고라가 없는 민주주의는 이름뿐인 껍데기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대선을 치루어는 현실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탐욕을 내려놓고 아고라를 회복하는 정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