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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기의 미학

김희경박사 2025. 4. 30. 07:07

“천만번 파도, 천만번 바람에도 남아있는 돌 하나, 내 가심 바당에 삭지 않는 돌 하나. 엄마!”열살에 엄마를 여의여야 했던“폭싹 속았수다”의 주인공 오애순이 삶을 끈기로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가슴에서 돌처림 버티고 있는 엄마이다. 이 드라마는 당차고 야무진 반항아이자 문학소녀인 오애순과 말없이 말없이 우직하고 헌신적인 소년 양관식의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냈다. 제주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서 가난하지만 애틋한 사랑으로 세월을 뛰어넘어 삶을 꽃피운다. 가족과 이웃의 사랑과 끈끈한 정을 보여 준다. 딸 금명이는 시인을 꿈꾸던 엄마가 쓴 삶의 편린들을 시집 “폭싹 속았수다”로 펴낸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이란 말이 있다. 이루기 힘든 일도 끈기있게 노력하면 이루고 만다는 의미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시선(詩仙)이라고 불리던 이백(李白, 701~762)의 이야기이다. 이 말은 남송시대에 축목(祝穆)이 쓴 지리서 방여승람(方輿勝覽)에 있다. 이백은 소년시절에 중도에 학문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노파를 만났다. 노파는 물가에 있는 바위에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었다. 이백은 궁금하여 그 연유를 물어 보니 바늘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노파의 끈기와 노력에 감명을 받은 이백은 그 길로 다시 산으로 돌아가 학문에 매진하게 되었다. 미국의 정치가 밴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1706~1790)은“기운(Energy)과 끈기는 모든 것을 이겨낸다”고 했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Napoleon Bornaparte, 1769~1821)도 “승리는 가장 끈기있는 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인생에서 성공하려거든 끈기를 죽마고우로, 경험을 현명한 조언자로, 신중을 형님으로, 희망을 수호신으로 삼아라”영국의 시인이며 수필가인 조지프 에디슨(Joseph Addison, 1672~1719)은 조언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엔젤라 더크호스(Angela Duckworth)는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용기를 그릿(Grit)이라고 했다. 이는 성장(Growth), 회복력(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의 머리 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그릿은 단순한 열정이나 근성이 아니다. 담대함과 낙담하지 않고 매달리는 끈기를 포함한다. 본래 그릿(Grit)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는 기개(氣槪)인데 목표를 향해 오래 나아갈 수 있는 열정과 끈기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는 말했다.“세상은 당신이 떨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어야 한다.”끈기는 마라톤 정신이다. 마라톤은 육체의 고통과 끈기의 싸움이다. 끈기는 자기 결정과 약속을 지켜내는 힘이다. 끈기는 쉽게 단념하지 않고 끈질기게 버티어 나가는 정신이다. 타고난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완주하는 끈기이다. 마라톤은 목표를 향한 질주이다. 목표는 가장 강력한 끈기의 에너지이다. 목표는 고도로 집중된 바램이다. 목표를 위해 집중해야 한다.  분산은 약한 것이고 집중은 강한 것이다. 분산은 파멸하는 과정이다. 결합은 지켜내는 과정이다.  

  문학가 조윤제(趙潤濟, 1904~1976)교수는 은근과 끈기의 특성이 한국문학의 현저한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문학은 혼돈 광막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영국의 문학은 유모스러우며, 일본의 문학은 담백 경쾌함이 특성이라고 평가했다.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견디어 내는 은근은 한국인의 아름다움이며, 끈기는 한국인의 힘이다. 무궁화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은근과 끈기의 미덕을 보여준다. 애국가 역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영원을 기리는 은근과 끈기를 보여준다. 언제부터 우리는 끈기의 기질을 잃어버렸다. 빨리 빨리는 우리의 기질이 아니다. 오자가 없는 팔만대장경, 세종의 한글 창제, 꼼꼼한 조선왕조실록 등 끈기와 열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유산이다. 요즘 우리는 작은 바람에도 자기 결정과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버린다. 양은 냄비의 물 끓듯 펄펄 끓다가 금방 식어버린다. 도무지 참아내고 기다리지 못한다. 깊은 사유없이 툭툭 만들어내는 법은 엉뚱한 부작용을 낳는다. 우리의 정치사는 불행하다. 역대 대통령들은 언제나 환호와 공격의 대상이었다. 반목을 만들고, 갈등을 빚는 정치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이든, 일반 국민이든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려주고, 맡겨진 일에 열정과 끈기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