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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섬의 미학

김희경박사 2025. 5. 8. 00:18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영국의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Charilie Chalpin, 1889~1977)은 이야기 했다. 우리나라 시인 진은영(1970~)도 산문집‘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에서“인간은 항상 타인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수축과 후퇴를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점에서 물러섬과 드러내지 않음은 타자를 배려하는 미덕인 한편, 드러내기 문화에 반하는, 가장 현대적인 저항의 태도가 된다.”고 말한다. 천재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남긴 말이 있다.‘우리 자신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구경꾼의 입장으로 물러나면 이 물러남에 의해 세계는 객관적인 세계가 된다.’그 속에 있으면 볼 수 없는 것도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관계나 위치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용기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억압에도 용기 내어 진실을 말하는 것을 파레시아(Parrhesia)라고 했는데 무대에서 퇴장하는 것도 파레시아만큼 용기있는 행위이다. 인간은 드러내기와 뒤로 물러섬이 자유로울 때 아름답다. 물러섬은 객관적으로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1889~1976)는 “앞으로 나아감의 개방성과 뒤로 물러섬의 수용성으로써 수행되는 존재 사유를 내맡김(Gelassenheit)”이라고 했다. 어떤 새로운 사태가 다가올 때 지양(止揚)하지 않고 오히려 뒤로 물러서야만 한다. 물러섰을 때 사태를 바로 볼 수 있다. 물러섬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상황을 수용하는 미덕이다.  

  어떤 이의 떠남은 침묵보다 깊고, 어떤 이의 물러섬은 남은 이들에게 더 큰 울림을 남긴다. 정치의 품격은 자리를 차지할 때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내려올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법원은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전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 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선거의 공정성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이대표는 대장동,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대북송금 관련 의혹, 위증교사,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혐의 등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상황에서 이대표는 여전히 대통령 후보로서 갈길을 가겠다고 한다. 정치 지도자는 사법적으로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해서 정치적 책임마저 면제받을 수 없다. 정치인은 공인이다. 리더이다. 리더십의 불변의 법칙에서 신뢰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국민은 정치인의 정당성을 기준으로 신뢰를 부여하며, 공인의 공적자리는 공적신뢰 위에 세워진다. 그 신뢰가 흔들릴 때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정치의 품격을 지키는 선택이다. 하이데거는 진정한 사유는 한걸음 뒤로 물러섬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이는 도피가 아닌, 더 깊은 이해를 위한 거리두기이자 여백이다. 성찰은 자리를 내려놓고 물러섬으로 시작될 수 있다. 자신이 결백하다면 스스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결백을 증명할 기회를 열어야 한다. 사법과 정부의 기능을 무력화하는 행위는 오히려 국민의 저항을 키울뿐이다. 물러섬의 결단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품격있는 정치를 보여 주는 것이 옳다.

  미국의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종신집권의 유혹을 뿌리치고 스스로 물러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멜슨 만델라도 연임이 가능했지만 단임 대통령으로 권좌를 떠났다. 그들의 물러섬은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오히려 더 높였다. 물러남은 나아감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인 리처드 밀하우스 닉슨(Richard Milhous Nixon,1913~1994)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 했다. 자신이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건은 아니었다. 당시 베트남전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불법 칩임과 도청이 있었는데 닉슨은 이를 알고도“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I am not a crook!)”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결국 국민에게 사건을 은폐하려고 거짓말 한 것이 드러나서 상하원의 탄핵을 당하게 되었다. 솔직하게 국미에게 사과했으면 헤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물러섬의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지도자의 정직과 진정성, 신뢰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진정성 리더십의 저자 윤정구박사는“정성이 옅은 유사리더들은 불의와 잘못에 대한 죄의식를 갖지 않는다. 남의 탓으로 외재화시켜 무기로 만들어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인간임을 포기한 죄의식이 전혀없는 사람들이다.”라고 지적한다. 우리 는 깨끗하고, 정직하고,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고, 물러섬(standing back)의 지혜가 충만한 지도자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