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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미학

김희경박사 2025. 6. 5. 21:10

“인생은 그냥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양귀자(梁貴子,1955~)의 소설 ‘모순’에 나오는 말이다. 이 소설은 겉으로 보이는 행복과 실제 느끼는 행복의 차이, 선택의 순간에서 마주하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우리 삶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모순들은 오히려 위로와 통찰을 전해주기도 한다. 항생제인 페니실린의 발견은 탐구의 결과가 아니라 우연히 가져다 준 발견이다. 19~20세기 영국의 미생물학자,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이 일하던 실험실의 아래층에서는 곰팡이를 연구하던 라투스가 실험을 하고 있었다. 1928년 여름 플레밍은 포도상균을 기르던 페트리 접시를 배양기 밖에 둔 채로 휴가를 떠났다. 휴가에서 돌아온 플레밍은 페트리 접시 위에 푸른색 곰팡이(Penicillium notatum)가 자라있고 곰팡이 주변의 포도상균이 깨끗하게 녹은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특별한 곰팡이는 아래층에서 올라온 것이었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열심히 연구해서 공식과 가설과 이론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정말 모든 발견이 고된 연구의 결과일까 그렇지 않다. 세상을 바꾼 이론은 모순의 결과물이 의외로 많다.

  모순(Contradiction, Paradox)은 이치에 맞지 않아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우리 주변은 온통 모순투성이다.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늘 그대로이길 바란다.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전쟁을 준비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면서 규제하는 법을 부지런히 만든다. 우리 안에도 모순이 있다. 이성과 감정, 말과 행동, 선한 양심과 거짓 등의 내면적 모순을 부인할 수 없다. 모순이 없는 척하는 것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다. 모순(矛盾)은 창(矛)과 방패(盾)를 뜻한다. 중국의 법가 한비자(韓非子)의 일화에 비롯되었다. “옛날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장사꾼이 있었다. 그는 창을 팔때는‘내 창은 매우 날카로워서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고 방패를 팔 때에는 ‘내 방패는 매우 단단하여 뚫릴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창으로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 이 질문에 장사꾼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모순은 동시에 참일 수 없는 논리적인 충돌을 의미한다.

  세상은 이상하다. 거짓이 진실을 누르고, 불의가 정의를 이긴다. 진짜는 외면당하고 가짜는 박수를 받는다. 우리는 매일같이 미디어에서, 일상에서 그런 모순을 목격한다. 정상이 아니다. 이처럼 모순적인 현실을 단순히 한탄하고 외면하기 보다는 그 모순이 던지는 질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헤겔은 모순을 존재의 본질로 보았다. 그는 세계가 정과 반의 충돌을 통해 더높은 차원의 합으로 나아간다고 믿었다. 겉으로는 비이상적이고 부조리해 보이는 충돌이 사실은 역사의 발전을 이끄는 동력이라는 것이다. 자유를 예로 들어본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다(정.Thesis). 인간은 사회적 규범과 제약 속에 살아간다(반.Antithesis), 진정한 자유는 규율과 조화를 통해 실천된다(합.Synthesis). 자유와 제약은 논리적으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헤겔은 두 개념이 대립하면서도 통합을 통해 진리를 향해 발전하다고 보았다. 모순은 현실이다. 모순은 없앨 것이 아니라 통합하고 극복되어야 한다. 니체는 당신을 죽이지 못한 고통은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모순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우리를 잠에서 깨운다. 모순이 부딪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체념이 아니라 자각이다.

  모순은 타협을 통해 진보된 통합을 만든다. 모순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단지 자기 이상, 도덕, 원칙, 양심, 윤리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타협은 위협이 아니다. 위협은 상대의 의지를 꺽으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경고는 위험으로부터 사전에 보호하려는 선한 행동이다. 모순으로 비롯된 대립을 통합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타혐은 자기 낮춤에서 시작한다. 좋은 타협은 오만을 참아주고 상처를 싸매준다. 좋은 타혐은 눈앞의 상황을 넘어 전체 그림을 보고 판단한다, 좋은 타협은 눈감아줄 줄 안다. 불쾌한 감정으로 갈라서지 않고 조화와 굽힘의 미덕을 발휘한다. 타협은 하지만 미래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어도 나쁜 감정을 훌훌털어버려야 한다. 분노, 시기, 탐욕, 원한, 두려움, 미움, 상처 등 부정적인 요소들을 모두 버린다. 그럼에도 미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대선결과를 놓고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심화될 수 있다. 서로 모순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모순은 정치가 존재하는 본질임을 알아야 한다. 모순을 진리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정치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