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거리가 보일 때 먼저 후다닥 해치우는 사람. 과자 먹고 난 봉지 손에 움켜쥐고 먼저 쓰레기통 찾는 사람. 외출할 때 한 템포 빨리나가 신발정리하고 신을 챙겨주는 사람. 강사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경청하는 사람. 말을 할때마다 부드러운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 길에서 몸 불편한 사람을 보고 짐들어 주는 사람, 저 멀리에서부터 손 흔들며 먼저 아는 척하며 달려오는 사람” 소천의 “힘이 되는 사람”이라는 시를 정말 좋은 명언에서 가져왔다.
설거지거리를 보면 앞서 해치우는 행동, 이웃을 배려하는 태도, 부드럽고 정다운 말을 걸어 주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설거지라는 일이 하찮기에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우는 일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아내가 투병을 시작했을 무렵 생활패턴을 바꾸었다. 한번도 먹는 것을 준비하거나 설거지를 해본적 없었지만 그 때부터 먹거리를 위해 시장을 보고 종종 아침과 저녁에 음식을 만든다. 물론 설거지도 한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설거지하기 게임으로 즐겁게 하기도 한다. 가끔 아내가 식사를 하고나서 자기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하지만 난 설거지 하는 일이 즐겁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세상의 일들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지만 단 몇분이지만 내 생각대로, 내 손끝에서 깨끗하고 반짝거리는 존재를 새롭게 한다는 점이 기쁘다. 물론 방심하면 물이 튀어 바닥을 더럽히고, 그릇을 깨는 위험도 있고, 단순하고 반복하는 일이라 흥미롭지도 않을 수 있다.
설거지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음식을 먹고 난 뒤 그릇을 깨끗이 씻어서 치우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영어의 대접을 씻는다(dish-washing)는 말과 그 뜻이 같다. 그러나 본래 설거지는 우리말 설엊다로 수습하다 또는 정리하다로 치우다와 준비하다의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본다. 앞설거지의 의미로 비설거지, 눈설거지라고 할 때 비오는 것에 대비해서 마당에 널린 곡식을 거두고, 장독대의 두껑을 덮고, 하수 등을 깨끗하게 하는 대비를 말한다. 뒷설거지는 가을걷이를 하고 난 다음의 전리로 갈설거지, 전치를 끝내고 남은 음식을 먹어 치우는 잔설거지 등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설거지는 음식을 먹고 난 뒤 그릇을 씻어 정리하고, 다음 식사를 위해 그릇을 깨끗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설거지는 단순히 잡다한 일중에 하나가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 접하는 일이지만 짧은 시간에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이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의 시간이기도 하다. 잔반을 거두어 내고, 물과 세정제의 거품을 내어, 수세미로 닦아내고, 물기를 제거 하고 가지런히 정리할 때 무질서와 더러움으로부터의 재창조의 과정을 경험한다.
설거지는 신비롭고 평화롭다. 설거지는 우리를 지혜롭게 한다. 설거지는 작은 일 같지만 주방의 청결함은 박테리아의 오염이나 세균의 침범을 막는다. 작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작은 일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운다. 음식을 만들면서 번거롭지만 그때 그때 설거지를 하면 마음이 편하다. 싱크대에 씻지않은 그릇들이 쌓인 것을 보면 더러움을 느낀다. 자기가 먹은 것인데도 그렇다. 설거지는 미루지 않는 일처리의 중요함을 깨우치기도 한다. 설거지는 씻는 순서가 있다. 기름이 묻은 그릇은 맨 나중에 식초를 뿌리고 세제로 씻어야 비린내와 기름끼를 없앨 수 있다. 이는 일을 할 때 차근차근하게 할 수 있음을 배운다. 설거지를 하면서 자기성찰의 지혜을 얻는다. 가족과 더불어 하는 설거지는 협력과 소통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설거지는 단순하게 식사후에 그릇을 비우고 씻는 것을 넘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는 설거지되지 않은 일들로 가득하다. 무질서화되고 혼란 스럽다. 길가에는 예외없이 공유자전거와 킥보드가 널려있다.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가 여전히 공원의 벤치주변에 흩어져 있다. 커피를 마시고 빈 컵을 벤치에 둔채 자리를 뜬다. 시작은 창대 했는데 나중은 애물단지로 바뀐 것들이 즐비하다. 제대로 설거지를 하지않은 결과이다. 설거지는 평가의 시간이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서 점원에게 대부분 설거지를 시킨다. 그런데 주인이 설거지를 하면 잇점이 있다. 손님들의 입맛을 가늠할 수 있다. 잔반이 없는 반찬은 손님들이 좋아하는 반찬이다. 젓가락 한번 대지 않고 물리는 반찬은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손님이 음식을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웠다면 좋은 음식이다. 손님들의 취향과 맛을 가늠하고 준비한다면 틀림없이 맛집이 될 수 있다. 설거지는 일의 마무리이고 새로운 일의 시작이다. 이제 가을이다. 태풍이 올 위험이 높다. 태풍에 대비한 비설거지를 제대로 해야 한다. 매년 오는 태풍인데도 늘 부족하다. 금년에는 비설거지를 제대로 해서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