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 좋고 열매 많노니...”세종대왕 29년(1447년)에 간행한 악장 용비어천가 2장의 첫 구절이다. 지난 여름 10호 태풍 산산이 일본 가고시마현 야쿠시마에 있던 수령 3,000년의 야요이 삼나무를 넘어뜨렸다. 높이 26.1m에 둘레가 8.1m에 이르는 거목이다. 뿌리가 뽑히면 어떤 나무도 지탱할 수 없다. 필리핀에 있을 때 태풍을 직접 겪은 일이 있다. 태풍으로 송전전봇대가 넘어져 정전이 되어 공장은 가동을 한 달이나 멈추어야 했다. 수백년 된 고목이 꺽이고 도심의 빌딩 숲은 강풍의 소용돌이에 유리창이 깨지고, 광고판넬 등의 부서진 파편으로 도시를 초토화 시켰다. 신기한 것은 강풍에도 코코넛야자나무(Cocos nucifera)는 쓰러지지 않았다. 깊고 넓게 퍼진 뿌리때문이라고 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안정적으로 줄기와 가지와 잎을 지탱한다.
국어사전에는 뿌리를“식물을 떠받치고 땅속으로부터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는 기관”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뿌리는 식물의 기관 이외에도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근원(Eradicate), 시초(Origin), 태생(Based on), 핵심(Shoots), 근본(Root) 등이다.“뿌리가 다르면 줄기가 다르고 줄기가 다르면 아지(兒枝)가 다르다.”는 속담이 있다. 근원이 무엇인가에 따라 일의 과정과 결과가 달라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땅속 깊이 내린 뿌리는 가뭄에도 물을 흡수해서 생존을 유지한다. 잔뿌리에 붙어 있는 뿌리 털은 토양과의 접촉면을 넓힘으로 충분한 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이런 식물의 뿌리에서 지혜를 얻는다. 리더의 신념, 사고, 의지는 조직을 떠받치는 뿌리이다. 조직이 직면하는 거대한 태풍의 위협에서도 뿌리 깊은 조직이나 공동체는 버티고 생존할 수 있다.
뿌리는 얼이고 생명이다. 맹자(孟子. BC372~289)는 사람의 마음 속에 인의(仁義)의 본성이 뿌리박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 마음의 품고 있는 사랑과 정의로움은 본성의 뿌리이다. 일제 강점기에 3.1운동을 계획하고 있을 때 이승훈(1864~1930선생은 독립선언문에 서명할 기독교 대표를 찾고 있었는데 몇몇사람이 종교인으로서 서명을 하기 힘들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 때 이승훈은 책상을 치면서 외쳤다.“나라없는 놈이 어떻게 천당에 가! 이 백성이 모두 지옥에 있는데 당신들만 천당에서 내려다 보면서 거기 앉아있겠다는 거야?”뿌리가 뽑힌 나라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처절한 외침이었다. 뿌리는 공동체 정신이고 생명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을 버티는 힘이다.
뿌리는 축적된 경험이다. “ 지금까지 죽은 사람의 수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열네 배나 많다. 그처럼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축적해놓은 경험을 무시하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것과 매한가지다”라고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1964~)은 말했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들이 불편하면 지우려고 한다. 심하면 왜곡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치욕스럽고, 악몽과 같았던 고통의 역사는 트라우마가 되어 위축된 삶을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앞서 간 사람들이 남긴 사상, 이야기, 업적, 유물 들의 축적된 경험들을 통해 항해를 할 수 있다. 뿌리를 잘라내는 일이야말로 어리석다. 뿌리는 잇댈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다. 유럽의 도시들을 보면 그들은 조상들의 축적된 경험인 유산이 오늘을 풍요롭게 만든 것을 본다.
뿌리는 정체성이다. 성경 잠언서에“악인은 불의한 이익을 탐하지만,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의인은 신과 사람 앞에서 신실한 사람 곧 뿌리가 깊은 사람이다. 과일나무는 매년 많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한 해가 풍년이면 다음 해에는 열매가 없다. 이를 해거리 또는 격년결과(隔年結果)라고 한다. 과일나무가 생존을 위해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이다. 과일나무가 열매를 잘 맺으려면 충분한 영양을 섭취 하고 건강해야 하는데 토양의 거름기를 다 소모하면 작물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영양을 축적한다. 이런 과일나무의 생리를 알지 못하는 농부는 열매에 집중한다. 지혜로운 농부는 토양을 기름지게 만들기 위해 거름을 주고, 해거리 없이 뿌리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도록 집중한다. 조직의 리더가 성과에 집중하면 놓치는 일들이 있다. 리더십은 구성원들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풍토에 집중하는 것이다. 조직풍토는 조직문화이고 조직이 가진 독특한 본질이고 정체성이다. 우리 삶의 뿌리 역시 자아 정체성이고 존재의 의미이며, 삶의 목적이다. 뿌리가 든든하면 폭풍에도 가지는 흔들릴지언정 든든히 버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