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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의 미학

김희경박사 2024. 7. 23. 09:36

  우리가 살고 있는 누리는 경이롭다. 우리 지구는 적도를 기준으로 시간당 1,674km의 속도로 자전하고, 시간당 평균 107,280km 속도로 태양을 공전한다. 잠깐이라도 갑자기 멈춘다면 그대로 인류는 멸망한다. 우리 태양계는 우리 은하의 한 모퉁이에 불과하다. 우리 은하에만 태양같은 항성이 4,000억개가 넘는다. 우주에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가 관측가능한 것만 2조개나 된다고 한다. 그런 무한한 우주에 지적생명이 살고 있는 유일한 별이 우리 지구라면 그 자체로도 경이롭지 않은가? 과학자들은 가설만으로 생명체가 있는 별들이 있을 거라고 하지만 아직 어떤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는 다양한 삶을 살고 있지만 세상 속에 지구라는 하나의 공동운명체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누리이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세상을 차지하고,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누리는 세상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지만 누리다는 마음껏 즐기거나 맛보다라는 뜻이다. 의미상 동사 누리다는 누리와 어원이 같다고 본다. 어떤 권리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무엇인가를 누릴 때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이란 표현을 하는데 그 말의 뿌리가 같다. 누리는 세상이 창조된 목적과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에 보면 신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기에 심히 좋았다고 감격한다. 좋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토브 메호드(טוב מאוד)이다. 엄청나게 풍부한, 최상의 상태를 의미하는 메호드와 선하고 좋은 상태를 의미하는 토브의 합성어이다. 신은 세상을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안식을 했는데 안식의 의미가 누리는 것이다. 신은 인간과 더불어 창조된 세상의 아름다움과 풍요와 생명을 누리도록 했다.

“다른 사람들이 비를 피하려고 마차로, 헛간으로 달려갈 때 너는 비구름 바로 아래 서서 비를 흠뻑 맞아라. 생계이어가는 행위를 일이 아니라 유희로 만들어라.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지는 마라. 인간은 믿음과 모험심이 부족하여 그저 자기가 발붙이고 사는 곳에서 꼼짝하지 않고 물건을 사고팔며 인생을 노예처럼 산다.”월든(Walden)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의 말이다. 그는 철학자이며 사회 운동가였다. 2년동안 월든 호수가에 오두막을 짓고 자연 속에서 단순하고 자급자족의 삶을 경험하며 자발적 고립에 대해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노예는 삶을 누리지 못한다. 자신의 삶이 아닌 주인의 삶을 산다. 호구지책으로 일한다. 일은 괴롭고 힘든 형벌이다. 누리는 삶은 주인의 삶이다. 일은 도전이고 극복이다. 성취하고 희열을 느낀다. 해산의 고통 후에 기쁨을 누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관계적이다. 모든 세상을 온누리라고 한다. 온은 전체나 전부의, 또는 모두, 완전함의 의미를 포함한다. 전체는 부분을 합한 것이다. 곧 세상은 모든 피조물들이 연합된 하나인 것이다. 연합된 세상은 창발성을 갖는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개별적으로 독립된 입자로 분리되지 않고 양자로 그물처럼 얽혀 있다. 세상은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물질 요소가 서로 연결되고,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관계적 세상은 안전하고, 평화롭고, 의미를 지닌 아름다운 세상이다. 관계적 세상은 아름답고 선한 세상을 함께 누린다. 그런데 세상은 현실적으로 결핍으로 불안하고, 위험하고, 무의미하다. 누려야 할 아름다움이 희미하다. 사람의 탐욕적 교만과 무책임과 게으름의 태만, 거짓과 사기 등 기만으로 가득하다. 불평등으로 결핍의 고통을 더한다. 영국의 철학자이며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선’이며 선을 최대화하는 것이 정의라고 했다. 동의할 수 없다. 세상은 다수가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누리는 것이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이 정당화될 수 없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우리가 이 세상에 던져졌다고 말했다. 태어날지 말지, 어느 환경에 태어날지, 어떤 부모에게 태어날지, 어떤 교육을 받을지를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 내 던져짐(Geworfenheit)의 존재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적을 곰씹으며 천천히 산책을 하라고 말했다. 반론을 제기한다. 우리는 세상에 유기된 존재가 아니다. 세상을 누리도록 선택된 존재이다. 누군가 우스갯 소리로 세상에 없는 세 가지가 있다.“많은 월급”“좋은 상사”“예쁜 마누라”라고 한다. 어떤 것도 만족함이 없다는 말이다. 세상을 누린다는 말은 주어진 삶에서 자족을 배우는 것이다.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더불어 나누고 화목하는 것이다. 아름답고 선한 일을 힘쓰는 것인다. 모든 일에 감사는 하는 것이다. 인간의 약함과 결핍을 알고 겸손한 태도로 기도하는 것이다. 성경 은 이것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세상을 누리도록 선택된 존재로서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