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퍼뜨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촛불이 되거나 또는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미국의 소설가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 1862~1937)의 말이다. “바람과 파도는 항상 가장 유능한 항해자의 편에 선다”고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은 말했다.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가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정의가 모호한 시대이다. 우리나라 역시 소용돌이 치는 풍랑과 거센 파도가 일렁거리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느낌이다. 격랑의 시기에는 늘 영웅이 있었다. 그 영웅은 스스로 촛불이 되거나 모든 사람의 거울이 되어 빛이 되었다. 이 빛을 아우라(Aura)라고 생각한다. 아우라는 예술작품의 원본만의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이다, 사진이나 영화 등의 복제물에는 생겨날 수가 없는 신비함이다. 아우라는 종교적 의미를 갖는 영기, 신비스러운 효력, 신비스러운 분위기 등을 뜻한다. 고대 희랍어의 기원에 따르면 입김, 공기, 가볍고 부드러운 바람 등을 의미한다. 중세 유대교의 신비주의인 카발라(Kabala)의 따르면 사람의 주위를 감싸고 있고, 영혼이 지니고 있는 어떤 정기(精氣)라는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중세시대의 성화에서 성인들이나 천사들 머리 주위에 둥그런 후광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종교적 의미에서 그들을 감싸고 있는 특별한 영기로서의 아우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2023)는 1984년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1988년에‘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삶은“한 번 밖에 없다”는 일회성, “그럴 수 밖에 없다”의 필연성, “그럴 수도 있다”의 우연성을 지닌다. 쿤데라는 소설을 통해 삶을“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미묘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에 대해 무엇이 더 긍정적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이다. 인간은 고유한 존재감과 깊이의 아우라를 지닌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치는 아빠의 아우라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4월 4일에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을 파면했다.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아우라가 있는 지도자를 기대한다. 아우라가 있는 사람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확고한 가치관과 삶의 철학을 지니고 있다. 세속의 흐름을 따르기 보다는 본질을 탐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킨다.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깊은 내면과 감성을 연마하기 위해 예술, 문학, 철학을 통해 내면의 세계를 확장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빛으로의 품위를 지닌 인상을 남긴다. 그들의 매력은 결코 꾸며진 품위가 아니다. 늘 진정성있는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며, 자연스러움과 독창성으로 본연의 개성을 살린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처럼 태도와 말투, 용모, 몸짓 하나 하나에 조화로운 흐름이 있고 특별한 분위기를 만든다. 빛이 변함이 없듯 시간이 지나도 그들에게는 사라지지 않는 신뢰성과 성실함이 있다. 늘 학습을 통해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견해를 갖느다. 다른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며, 사람의 심리에 폭 넒은 이해를 갖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현대를 아우라를 상실한 시대라고 말한다. 국민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지도자들은 권력을 탐하고, 명예에 눈 멀고, 이익을 취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철학도, 줏대도, 분별력도 없다. 바람부는대로 흔들린다. 생각하지 않는 갈대일 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실감한다. 팔로워들은 그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던져진 미끼를 물려고 혼신을 다한다. 고대에도 여전했던 것 같다. 플라톤은 민주주의의 가벼움을 비판했다. 그는 통치자는 철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옳다. 정치적 지혜와 윤리적 덕목을 갖춘 지도자가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 통치자는 개인적인 욕망을 초월하고,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고 헌신할 의무를 갖는다.통치자는 지혜, 용기, 절체, 그리고 정의의 덕목을 지녀야 한다. 이제 다시 선출할 대통령은 정파를 초월한 선거가 되어야 한다. 지식과 덕을 갖추고, 정의롭고 조화로은 사회를 구축하려는 철학적 비전을의 아우라를 지닌 인물을 선출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생각있는 참정권을 행사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