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은 날아가고 진실은 절뚝이며 뒤따라 간다. 거짓이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사이 진실은 아직 신발을 신고 있다”영국 케임브릿지 대학의 더밴 더 린덴(Sander van der Riden)교수가 쓴‘거짓의 프레임: 우리는 왜 가짜에 더 끌리는가?’에 보면 미국 MIT 미디어 연구팀은 진실과 거짓의 전파속도를 조사했는데 평균 1500명에게 도달하기까지 진실이 거짓보다 6배정도 오래 걸리다고 한다. 거짓이 진실보다 빠르고 강한 이유는 단순하면서 쉽게 이해되는 매력 때문이다. 진실은 복잡하고, 때로는 불편하고 증명해 내기가 쉽지 않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중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언어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두려움, 분노, 희망같은 감정을 전략적으로 이용한다. 반면에 진실은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생각하게 만들며, 감정보다 이성을 요구한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도구가 프레임과 선동이다. 나치 독일의 악명높은 선동가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1897~1945)는“거짓말을 충분히 큰 목소리로 반복해 말하면 사람들은 결국 믿는다”고 말했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큰 거짓말에는 항상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다. 한 국가의 국민 다수는 의식적이거나 자발적인 차원보다 깊은 정서적 차원에서 더 쉽게 타락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원시적 단순성 때문에 사람들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잘 속는다”고 했다. 거짓과 왜곡은 자기확신에 차 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신중함은 약해 보이고, 거짓은 강해 보인다. 사람들은 강한 말을 올바른 말이라고 착각한다. 거짓을 따르는 사람들의 속성은 이익에 민감하다. 더 큰 보상을 주거나, 안전한 삶을 보장한다면 거짓을 스스로 믿으려 한다. 진실을 외면하고 불의한 권력을 지지한다. 선동이 먹히는 이유는 다수의 집단이성과 전문가의 그럴듯한 이론을 곁들여 거짓을 믿으려는 신념에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 경제용어로 크레샴(Gresham’s law)의 법칙이다. 가치가 낮은 화폐가 가치가 높은 화폐를 몰아낸다는 것이다. 이는 비경제영역으로 확장되어 정치나 조직에도 적용된다. 불의한 구성원들이 신실한 인재를 몰아내고, 편법, 부정, 불의가 성실함과 의를 쫓아낸다. 조직에서는 아부형, 수박형 인간들이 유능한 사람들을 견제하고 자리를 차지한다. 거짓과 조작, 음모 등 질 낮은 정치가 유통되어도 당연시 된다.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거짓 이단과 사이비, 샤머니즘은 팽창하고, 정작 전통적인 종교인구는 감소한다. 양화의 가치가 인정받고 유통되는 사회가 아름답다. 양화와 악화를 분별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정치, 경제, 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어햐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미술사학자 유홍준(俞弘濬, 1949~)교수는 그의 책‘안목’에서 말했다. 안목(眼目)이란 사물의 좋고 나쁨 또는 거짓과 진실, 가치를 분별하는 능력이다. 안목은 분별을 통해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힘이다. 오늘 우리는 진실을 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정보는 넘치지만 그 중 상당수는 사실처럼 보이는 조작이거나 가짜이다. 설득의 심리학을 쓴 로버트 치알다니(Robert Beno Cialdini, 1945~)는“우리 편이 주도권을 잡으면 정보 프로그램이 되고 상대편이 주도권을 잡으면 선전 프로그램이 된다”고 말했다. 진실을 분별하는 안목은 혼돈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의 중심이다. 분별하는 힘은 감추어진 권력의 구조와 욕심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이 시대에 무엇보다 강력한 능력은 거짓을 알아보는 눈이다. 안목은 혼탁한 세계에서 진실의 무늬를 읽어내는 섬세한 감각이다. 우리 눈은 거짓이 없다. 보이는 대로 인식한다. 다만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의 말처럼 “사실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다.”눈에 보이는 사실을 바르게 해석하는 능력이 안목이다. 안목의 있고 없음, 높음 낮음에 따라 동일한 일, 사건, 관계를 해석하는 수준이 다르다. 안목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학습과 경험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사람이 사실과 거짓의 인지부조화를 느끼지 못하면 하등 동물과 다를바 없다. 진실은 조용하고, 선동은 소리친다. 우리는 속지 않기 위해 거짓 프레임과 선동을 분별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결코 눈을 속이지 않는 리더, 사실을 폭 넓게 보고 국가의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대통령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