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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미학

김희경박사 2024. 7. 24. 13:35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죽고자하면 살고, 살고자하면 죽는다)”는 이순신장군의 명언이다. 이 문장은 처음으로 별을 다는 장군에게 대통령이 수여하는 삼정검에 새겨진다. 삼정검은 조선시대에 임금이 병마를 지휘하는 장수에게 하사한 사인검(四寅劍)에서 유래한다. 칼(Knife)은 50만년전 석기시대부터 인류에게 친숙한 생활도구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용 용도에 따라 그 재료와 모양도 발전되고 변화하고 있다. 칼을 네델란드어로 메스(mes)라고 하는데 의사가 수술이나 해부를 할 때 쓰는 작은 칼을 말한다. 메스의 의미는 잘못된 일의 화근을 없애기 위하여 쓰는 비상수단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칼을 빗대어 이르는 의미는 다양하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는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을 도모하는 양면성을 가진 일본인의 행동패턴을 상징하는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 of Japanese Culture)”을 썼다. 김훈의 소설“칼의 노래”에서 칼은 이순신장군의 신념과 충성, 결의를 상징한다. 소설은 전쟁에 승리를 하여도 결국 왕의 칼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는 이순신의 고뇌를 보여준다.

  칼은 그 자체로 보면 힘이나 권위를 넘어 공격성, 복수의 적대감을 나타낸다. 조선시대 일본을 다녀온 조선통신사의 사행록(使行錄)에 보면 일본인이들이 칼을 차는 모습을 적고 있다.“일본의 남자는 항상 대중소(大中小)의 세 개의 칼을 찬다. 큰 칼은 죽이는 것이요. 가운데 것은 방어하는 칼이요. 작은 것은 자살용이다. 나라의 풍속이 용감한 것을 높이 친다. 검과 창은 모두 싸움터에 나가 한 몫을 한다. 항상 띠를 매는데 두 개의 칼은 앉거나 누어도 차고 풀지 않는다. 비록 어린아이라도 단검을 항상 차며 스스로 연습을 한다.”칼이 일본인들의 정체성이고 생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날에도 우리는 누구나 칼을 지니고 있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검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칼이다. 무엇인가 베고 자르는 기능을 넘어 책임이고, 신념이다. 때로는 희생과 명예이다. 자존감이 깃든 정신적 기제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장 예리한 칼은 언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때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칼과 다르지 않다. 언어가 권력의 도구로 쓰여지고,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 완전히 닫혀진 세계가 된다. 치명적일 정도로 진부한 세계가 된다. 사회적 갈등의 뿌리는 깊어지고 신뢰는 깨어진다. 코로나 후유증과 전쟁으로 경제도 어렵고 침체된 분위기는 쉽사리 살아나지 않는다. 용기와 위로를 주고 따뜻한 언어가 필요하다. 나눔을 위하고 평안을 주는 칼이 필요하다.    
  
  칼은 법이다. 양날의 날선 검은 정의를 세우기도 하지만 메스로서 불의를 도려내지 못하면 녹슨 검에불과하다. 고름나고 부패한 부분을 도려내야 모두가 산다. 당장은 고통스러울 수 있어도 화근을 잘라내는 비상수단이 정치의 역할이다. 칼은 힘이다. 주어진 칼을 제대로 쓰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지만 욕망을 위해 사용되면 전쟁을 일으키고 갈등을 빚고 공포를 자극한다. 칼은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칼이 제 기능대로 쓰여지면 아름다움을 만든다. 조각가에게 주어지면 예술을 창작한다. 쉐프에게 주어지면 별미를 요리한다. 명의에게 주어지면 생명을 살린다. 망나니에게 주어지면 생명을 죽인다. 성경에서 예수는 자신을 체포하러온 병사의 귀를 칼로 자른 제자를 꾸짖으면서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고 했다.

  칼은 진실이다. 성경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그리고 칼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고 했다. 이 칼은 거룩한 영의 검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거짓과 기만의 칼이 아니라 진실의 칼을 삶의 도구로 삼아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는 칼싸움이 그치지 않는다. 아이러니 한 것은 공권력의 칼은 무디어지고 입법권력은 특별한 검을 휘두른다. 민생을 위한 칼을 보기 힘들다. 메스를 든 의사들은 집단휴진을 선언했다. 메스는 돈을 버는 도구가 아니다. 생명을 살리는 수단이다. 물론 다수의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대로 희생, 봉사, 장인정신에 충실하다. 의사 친구에게 요즘은 병원도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친구는 환자가 돈으로 보이는 순간 의사의 정체성을 잃는다고 했다. 의사는 어떤 상황에도 생명이 우선이라고 한다. 옳은 말이다. 우리가 가진 사회적 책임의 칼, 신념의 칼을 갈고 닦아야 한다. 세계가 칼부림으로 고통에 늪에 빠져버렸다. 생각해 보면 리더의 칼 곧 리더의 가치관, 신념이 정말 중요하다. 세계를 자신의 욕망에 종속시키려는 칼부림에 다치는 사람들은 국민들이다. 잘못 쓰는 칼은 괴로움과 고통을 주지만 진실의 칼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