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이야기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그 이름이 이야기이다. 살아서 남긴 흔적들은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평가된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왔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야기를 통해 소통한다. 소통은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 막힘이 없이 잘 통하는 것을 말한다. 올해는 무덥고 긴 여름을 보냈다. 베란다의 화분에 일주일에 한번 물을 주었는데 닷새마다 주어야 했다. 하루라도 지체하면 꽃나무는 이파리를 축 늘어뜨리고 갈증을 호소한다.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전자기기들도 회로를 통해 신호를 주고 받음으로 기능이 작동된다. 동식물과 모든 사물들은 이렇게 신호를 교환함으로 살아가고 작동한다. 한점의 빅뱅으로 시작한 우주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어떤 형태로도 상호간에 소통이 가능하다. 멀리 떨어진 사람사이에도 마음의 주파수가 일치하면 텔레파시로 소통한다. 무신론을 주장하는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우연히 생긴 생명체의 신호정보를 밈으로 정의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만물이 서로 신호(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존재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박갑천의 어원수필(語源隨筆. 1978)에서 이야기의 어원은 중세기에 니야기로 쓰였는데 니와 악이 합쳐진 말이다. 니는 이(齒)이고 악은 억이다. 억은 공간을 의미한다. 부엌은 불이 있는 공간이고 뜨락은 뜰과 악으로 뜰이 있는 공간이다. 니악은 치아가 있는 공간을 말한다. 그 공간에서 나오는 말이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가 되었다.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통해 상상력을 키우고 생존을 위해 진화해 왔다. 국어사전에 이야기는 어떤 사물이나 사건, 현상에 대해서 일정한 내용을 가지고 하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람은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만들면서 성장한다. 삶은 이야기이다. 내면 깊이 뿌리내린 이야기가 가치와 신념을 만들고 삶의 기준이 된다. 축적된 이야기(Story)가 역사(History)가 되어 오늘을 조명하는 거울이 된다. 이야기는 정보를 전달하는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의미를 전달하며, 특정한 경험을 공유하는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과정이다.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 문화, 전통, 지식 등을 세대 간에 전달하는 유효한 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고,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다. 어떤 일과 가치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 내가 옳다고 고집을 부릴 수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역사교수, 미래학자인 자마이스 카시오(Jamais Cascio)는 오늘의 세계를 BANI시대라고 했다. 깨지기 쉽고(Brittle). 불안하고(Anxious), 비선형적(Nonlinear)이고, 이해할 수 없는(Incomprehensible) 혼란스러운 세상을 말핟다. 정답이 없는 모호함으로 가득하다. 누군가 말했다. 세상에 없는 세 가지가 있다. 공짜(Free charge)와 비밀(Secret)과 정답(Right answer)이다. 1938년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이 경제학을 여덟 단어인 There ain’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공짜 점심은 없다)로 표현했다. 조지오웰(George Orwel. 1903~1950)은 빅브라더의 억압된 사회을 그린 소설 “1984”에서 비밀이 없는 사회를 풍자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사지(四知)는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말이다. 이런 세상은 우리에게 다르게 이야기하기를 요구한다. 겉과 속이 같은 이야기, 투명하고 밝은 이야기, 원리와 원칙이 정답이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관심이 없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이 왕국이 생기기 이전에 사사시대가 있었는데 사사기 마지막 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도 일년이 다 되어가고, 레바논 헤즈볼라로 확대되고 중동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평화와 안정을 이유로 오히려 전쟁의 당위성을 이야기한다. 국내도 비슷하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실종된지 오래다. 국민은 혼란스럽다. 시스템은 부스러지고, 국민은 불안하고, 경제는 예측할 수 없고, 정의를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실감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진실과 배려, 조화, 협력의 이야기로 소통하는 사회이다. 왜곡되고, 헐뜯고, 비방하고, 허물을 들추고, 조롱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귀담아 듣고 즐거워하고 마음에 새기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풍성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 공동체, 조직의 이름이 품고 있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태어나면서 주어진 이름은 기대하는 삶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