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핵심 가치가 공감과 이성, 자유의 세 가지 축을 통해 현실 속에서 구체화 된다. 인간다움은 공감을 연료로 하고 이성을 엔진으로 하며 자유로써 규범을 구성하는 성품”이라고 한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김기현교수(1959~)가 쓴 인간다움의 정의이다. 물론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이 개인의 성격, 가치관과 경험에 따라 다양할 수 있지만 그는 관계적 인간다움에 대해서 말한다.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 관계적 인간으로서 윤리적 의식과 태도를 갖고 행동할 때 인간답다고 말할 수 있다.“덕은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지혜와 도덕적 가치를 포함한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그는 “돼지가 되어 즐거워하기 보다는 차라리 사람이 되어 슬퍼하는 게 낫다. 배부른 돼지보다 고뇌하는 인간이 되겠다”고 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덕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덕이란 훌륭한 성품 또는 우수한 품성을 의미하며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성격특성이다. 용기, 정의, 정의, 절제, 지혜 등과 같은 덕목들은 개인이 도덕적이고 책임감있게 행동하는 데 필요한 성품이다. 이런 덕성이 인간다움(Humanity)이다.
미덕 윤리(Virtue Ethics)는 윤리학의 하나이다. 윤리는 덕있는 삶을 의미한다. 덕있는 삶은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하고 그 가치관은 무엇이 좋고, 옳고, 바람직한지를 판단하는 관점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선과 악은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선이 될 수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치관의 수준에 따라 선과 악을 판단한다. 개인이 구분하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선과 악의 기준이 달라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 이 기준의 중용을 중요하게 강조한다. 그는 인간의 윤리적 행동이 극단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존재한다고 믿었다. 덕(德)은 성품의 결핍과 과잉사이에 있다. 좋은 삶은 그 사이에서 이어진다고 한다. 예를 들면 비겁함과 무모함사이에 용기가 있다, 사람들은 마주 친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태도와 행동이 다르다.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모든 성격특성이 화음의 조화를 이루는 지점을 윤리라고 생각한다.
자유론을 쓴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윤리적 행동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이다”라고 했다. 윤리 곧 인간다움은 개인의 좋음을 향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모든 사람이 다양한 역량과 성품을 가지고 있다. 이를 삶에서 완성해 가는 과정을 자아실현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기만의 영역에서는 혼자의 힘으로 자아실현은 불가능하다. 자기의 자리를 넓혀 가다 보면 다른 사람의 영역과 만나게 되고 된다. 이 만남은 경계이다. 인간다운 곧 윤리적인 사람은 경계선에서 협력과 유대를 모색하게 된다. 윤리는 부딪힌 가치관이 조화를 이루고, 신뢰를 만들어 내는 규범이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영역에서 절제하고 머무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도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이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도리나 규범을 윤리”라고 한다.
사람들 사이의 작은 다툼이나 계층 간의 갈등, 국가 간의 분쟁은 경계선을 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평화를 지키는 힘은 선을 넘지 않는 윤리의식이다. 다움은 다른 사람과 협력하면서 자기의 본분, 역할을 지키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불안한 세상을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해하려 한다는 불신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저수지의 뚝에 생긴 작은 틈이 댐을 허물 듯 인간다워지려는 윤리의식의 상실은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지게 한다. 포괄적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포괄적이란 성별, 나이, 장애뿐만아니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한 차별까지 모두 포함한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고, 사회통합을 통해 차별로 인한 갈등과 분열을 막고, 인간의 존업하고 평등한 가치를 지니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럴듯한 말에 함정이 있다. 성적지향에 대한 것이다. 성적지향은 동성, 혹은 복수의 성 또는 젠더를 나타낸다. 이 때의 끌림은 감정적이거나, 낭만적인, 성적인 끌림일 수 있고 이러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범성애, 무성애 등의 끌림이 모두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사회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가정이 흔들리고, 사회윤리 곧 인간다움이 모호해질 수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생물은 암수로 되어 있고 성적지향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아빠와 엄마가 차별이라 부모1과 부모2로 표기하는 사례도 있다고 하는데 1과 2는 차별이 아닌가?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인간을 폄훼하는 것이다. 인권은 인간다움의 윤리의식을 회복할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