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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미학

김희경박사 2024. 11. 26. 22:27

“어제의 방식으로 내일을 살 수는 없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John F. Kenned. 1917~1963)는 말했다. 언제나 과거에 머무는데 익숙하고 변화를 거부하면 오늘은 물론 내일도 없다. 우리 세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냈다. 조선에서 일제 강점기, 해방과 독립,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1960년대 말까지 우리는 수백년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60년은 천지가 개벽을 이룬 시대이다. 왕의 나라가 백성의 나라로 바뀌고, 세계의 경제, 군사대국이 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엄청난 사회적 진화를 경험했다.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총소득(GNI)가 36,194달러로 일본의 35,793달러를 앞질렀다고 한다. 한강의 기적은 어제의 방식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기술과 사회적 트랜드에 민감하게 적응하고 도전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중국 청나라의 학자로 영국에서 공부한 옌푸(Yen Fu. 嚴復.1854~1921는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에게 굴욕적인 패배에 자극을 받고, 국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사회,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898년 영국의 생물학자 토마스 헉슬리(Thomas Henry Huxley.1825~1895)의 진화와 윤리(Evolution and Ethics)를 번역하면서 해설을 곁들인 천연론(天演論)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진화란 자연이 펼쳐내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의 생각은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이 아니라 헉슬리의 사회진화론에 주목했다. 생물이 진화하는 것처럼 사회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화론에 대한 다양한 개념들을 번역했는 데 생존경쟁을 의미하는 경물(競物), 적자생존을 뜻하는 천택(天澤), 약육강식(弱肉强食)과 같은 말들이다. 이 말들은 당시 중국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고, 서양이나 일본처럼 진보한 국가에게 잡아 먹히게 될거라는 불안과 걱정이 퍼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개혁파 지식인들이 내놓은 개혁안을 청나라 황제인 광서제(光緖帝)가 받아들였다, 이를 무술변법(戊戌變法)이라고 했다. 입헌군주제가 궁극적인 목적이였지만 서태후와 수구세력의 쿠테타로 광서제는 폐위되고 개혁은 실패했다. 그러나 1911년 청나라는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결국 무너지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진화(Evolution)과 진보(Entwicklung. Progress)는 차이가 있다. 진화는 자연적 과정이고 진보는 역사적 과정이다. 진화론의 제창자 라마르크(Jean Lamarque. 1770~1832)는 1809년에 동물철학을 쓰면서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주장했다. 생명체가 계속 사용하는 기관은 후손에게 유전되고 쓰지 않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설이다. 다윈(Charles Darwin.1809~1882)는 1859년에 출간한 종의 기원에서 이를 부인하고 자연선택을 주장했다. 타고난 돌연변이로 인해 자연의 선택을 받아 외부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생명체가 더 많이 살아남은 적자의 선천적 특성이 유전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영국의 인류학자인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도 원형으로부터 무한히 멀어지는 변종의 경향성을 지니며 다양하게 진화한다고 했다. 사회적 진화 역시 점점 나아지는 발전만이 아니라 퇴화하거나 다양해 진다. 프랑스의 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는 학문과 기술의 발전이 인간본성을 타락시킨다고 했다. 문명이 자연적인 인간생활을 왜곡시켜서 사회불평등을 조성하고 결국 사회악(社會惡)이 생긴다는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인 노자(老子. BC571~471)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자연에게는 인간사회를 유리하도록 돕는 인자함이 없다는 것이다. 진화는 침팬지가 인간이 되는 종의 변화가 아니다. 지리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따른 삶의 적응일 뿐이다. 청개구리는 푸른 숲에서는 초록색으로, 바위틈에서는 회색으로, 흙담에서는 흙색으로 피부색을 바꾼다. 먹이사슬의 생태계에서 자기를 보호하려는 방어이다. 자연(自然)이란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 천연그대로의 존재, 사람과 물질의 고유성 혹은 본연성, 의식이나 경험 대상의 전체이다. 우리는 자연을 지키고 적응하기 보다는 발전을 명분으로 오히려 왜곡하고 훼손하고 있다. 자연의 순리와 질서를 망가뜨리고 거스리는 인간의 행위는 결국 호모사피엔스의 멸종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들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데 열중한다. 본연에 순응하는 사회적 진화가 변화에 대한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