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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의 미학

김희경박사 2024. 7. 24. 10:12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 있다. 50년전 군복무시절에 스칠정도로 잠깐 만난 강원채장군이다. 당시 그는 관구사령관이었는데 어느 날 새벽 불시에 부대를 순찰했다. 취사장을 돌아보다가 버려진 무꽁다리를 보고 야단을 쳤다. 먹을 수 있는 재료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면서 그것도 국민의 혈세라고 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넉넉해서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의 말은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야 한다는 집착이 그 때부터 생긴 것 같다. 자투리는 일정한 용도로 쓰고 남은 나머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나, 자로 끊어 파는 피륙의 팔고 남은 조각을 말한다. 종종 기레빠시라고 일본어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 하찮은 것이긴 하지만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이 자투리이다. 우리는 자투리의 작은 조각들을 모아 형태를 만들고, 버려질 것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로 특별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이런 재창조의 가능성이 자투리의 미학이다.

  자투리의 재발견은 상상력의 실현이다. 모양도 다양하고, 색깔도 각각이고, 크기는 다르지만 이를 섞어 조화를 이루면 그대로 예술이다. 풍요스럽지 못해서 아껴야 한다는 가난의 잔재라고 하기엔 소중함이 더 많다. 자투리의 미학은 나머지와 작음을 어울림으로 만든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주면에서 상상력의 소산인 자투리의 기적을 목격한다. 미국 뉴욕의 플렛아이언(Flatiron)빌딩은 독특한 생김새로 유명하다. 도로와 도로가 비스듬이 맞닿은 좁고 긴 삼각형의 땅 모양 그대로 삼각기둥처럼 날카롭게 지어졌다. 뉴욕의 관광객들에게 랜드마크이다. 안산의 고잔동에도 길고 좁은 삼각형 땅에 지어진 카페가 있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자투리 천을 모아 멋진 의상을 만든다. 자투리 고기를 뒷고기라고 한다. 돼지고기를 팔려고 나누고 자르면서 떼어낸 잡다한 부위들이다. 정품은 아니지만 맛은 일품이다. 자투리고기로 만든 요리들이 특별한 음식으로 각광을 받는다. 김밥을 말을 때 썰고 남은 자투리는 정말 맛이 있다. 고기도 뼈에 붙어있는 자투리가 더 맛이 있다. 자투리의 매력이다. 뿐만아니라 자투리의 사소한 일상을 이끌어 이야기에 담으면 대중이 공감하는 문학으로의 접근이 가능하다.

  자투리 시간과 공간은 사색과 깨달음의 기회가 된다. 우리 일상에 자투리는 널려 있다. 버려진 물건, 남는 시간, 좁은 공간, 남은 거리, 비워진 마음의 자투리이다. 도심에서 숲, 가로수, 습지, 하천, 화단 등 아생동물이 서식하고 이동하는데 도움이 되는 공간을 비오톱(Viotope)이라고 한다. 우리는 나름대로 자투리 공간에 비오톱을 만들 수 있다. 아파트 베란다에 심겨진 나무와 꽃들을 키우면서 생명의 신비와 넉넉한 마음을 얻는다. 영국의 정치가 필립 체스터 필드(Philip Chesterfield. 1694~1773)는 인생의 최고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막대한 재산을 탕진하는 것 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자투리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늘 몇권의 책과 작은 노트북을 지니고 다닌다. 약속시간에 앞서 가면 근처의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작은 토막의 글들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요즘은 가능하면 전철를 이용한다. 전철에서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 가벼운 책을 읽는다. 스마트 폰은 정보 도서관이긴 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진 않는다.

  세상은 주류에 의해서 움직여진다고 한다. 주류에서 밀려나면 소외된다. 그런데 성경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받는 하찮은 사람들을 불러 쓸모있게 하심으로써 이 세상에서 위대하다고 하는 자들을 아무것도 아닌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자투리 인간은 없다. 누구나 개인적으로 세상의 중심이고 주인공이다. 사회적 흐름을 주도하는 주류들은 파편처럼 흩어진 민심의 조각들을 모아서 엮겨나 잇는 자투리 정치를 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고 사회가 어수선하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든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물어 뜯고 상처내기에 여념이 없다. 정치적 이념도, 정체성도, 유산도, 가치도 사라졌다. 권력에 굶주린 아귀들의 다툼만 있을 뿐이다. 자투리 정치는 소수를 존중하는 정치이다. 침묵하는 대중의 마음 조각들을 모으는 기술이다. 자투리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쓸모를 찾는 지혜이다. 6월은 누리의 달이다. 누리는 세상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다. 세상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 지구,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사회,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곳, 천상에 대하여 지상을 이르는 말, 사람들의 마음 등이다. 누리는 생명이 가득한 공간을 말한다. 온 나라 구석구석이 생명으로 가득한 비오톱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